영화

퇴근길에 폰으로 일본 드라마를 보다가 든 생각

admin 2026-08-01
퇴근길에 폰으로 일본 드라마를 보다가 든 생각

익숙한 단어가 들려올 때의 당혹감

퇴근하고 지하철을 탔는데 너무 피곤해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습관적으로 폰을 켰다. 요즘 들어 부쩍 일본 드라마를 챙겨보게 된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현실감 없는 이야기들이 보고 싶어서다. 얼마 전에는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작품들을 쭉 훑어봤다. 예전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책으로 읽을 때 느꼈던 그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가 영상에서는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 보면 문득문득 한국어와 똑같이 들리는 단어들이 튀어나와서 흠칫하게 된다. ‘가방’, ‘약속’, ‘안전’ 같은 단어들 말이다. 그냥 한자어라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퇴근길의 몽롱한 정신으로 듣고 있으면 마치 내 옆 사람의 대화를 엿듣는 것 같아 괜히 집중이 깨진다. 일제강점기 영향 때문일까 싶어 검색도 해봤지만, 결국은 언어의 뿌리가 닿아 있는 한자어라는 결론 앞에서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았다.

넷플릭스냐 아니냐의 고민과 데이터 문제

사실 요즘은 OTT 서비스가 워낙 잘 되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뭐든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보려는 옛날 일본 드라마들은 정식 라이선스가 종료되었거나 아예 들어오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전에 TV 다시보기 사이트들을 기웃거리며 헤매던 기억이 난다. 어떤 곳은 속도가 너무 느려서 영상 하나를 보려면 버퍼링을 10분은 기다려야 했다. KBS나 MBC 드라마 다시보기처럼 정식 플랫폼이 잘 되어 있는 경우와는 차원이 다르다. 요즘은 웬만하면 월 1만 원에서 1만 5천 원 사이의 구독료를 내고 정식으로 보려 하지만, 가끔 보고 싶은 특정 작품이 없을 때는 참 난감하다. 그렇다고 불법 사이트를 찾아 헤매기엔 팝업 광고가 너무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스트레스만 받는다. 그냥 돈을 내고 편하게 보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걸 알면서도, 보고 싶은 게 없을 때의 그 허탈함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주인공이 일본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 드는 기분

SNS를 하다가 우연히 진세연 배우가 일본 도심에서 올블랙 원피스를 입고 찍은 사진을 봤다. 그냥 평범한 일상 사진인데도 왠지 모르게 도쿄의 그 좁고 아기자기한 골목길 풍경이 겹쳐 보여서 한참을 봤다. 나도 몇 년 전 여행으로 갔을 때 느꼈던 그 공기가 기억나서 그랬던 것 같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항상 그런 세련된 거리에서 우연한 만남을 갖거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왜 현실의 나는 지하철 7호선 안에서 피곤에 절어 스마트폰 화면 속의 풍경을 구경하고만 있는 걸까. 일본 드라마 특유의 그 과장된 감동이나 잔잔한 서사가 가끔은 현실 도피처가 되어준다. 물론 화면 속 주인공이 겪는 갈등도 결국은 그들만의 세상 이야기일 뿐인데 말이다.

작가들의 부고 소식이 전해질 때 느끼는 거리감

얼마 전 히가시노 게이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묘한 기분이었다. 당연히 살아있을 거라 생각했던 거장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는 뉴스는 드라마 속 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느낌이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여전히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고 있고, 내 핸드폰 속 화면 안에서는 그가 쓴 대사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데 정작 작가는 더 이상 다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다는 사실이 실감이 안 난다. 드라마 작가나 소설가들이 현실의 제약 때문에 타협해야 하는 지점들이 문득 궁금해진다. 32년간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온 다큐멘터리 주인공의 삶 같은 것들이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라는 뉴스를 보면, 과연 그 무거운 삶의 무게를 상업적인 매체에서 얼마나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완벽한 결말 따위는 없는 일상의 연속

결국 나는 오늘도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는 일본의 어느 작은 마을에 사는 주인공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다. 나도 내일이면 또 출근해서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겠지. 드라마처럼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결말은 내 일상에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폰을 켜서 다음 회차를 재생하게 된다. 아마도 그게 내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식인가 보다. 드라마가 끝나고 검은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 여전히 조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도 뭐, 일단은 오늘 볼 에피소드는 다 봤으니 그걸로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댓글3